애니메이션/극장판

시로바코 극장판 - 후기(스포있음)

Baeksan 2021. 2. 8. 20:08

영화 홍보 포스터

이번에 라프텔에서 공개된 시로바코 극장판을 봤습니다. 이전에도 한국에서도 메가박스등에서 상영했다고 알고있는데 그당시에는 시로바코를 모를때라 영화관에서 보지는 못했거든요(사에카노 극장판도 말이죠) 이번에 시로바코 극장판 Blue-Ray가 풀림과 동시에 라프텔에서 상영 판권을 가져온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번글에서는 시로바코 극장판을 보고 난 후기에 대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러닝 타임/TVA

시로바코 극장판의 러닝타임은 2시간입니다(정확히는 2시간 25초) 최근에 개봉한 귀멸의칼날 무한열차편이 117분인걸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애니메이션 극장판이 90분정도였던 관행에서 벗어나 점점 일반 영화 러닝타임에 가까워지고 있는것같네요. 일단 저는 시로바코 극장판의 TVA편을 정말 즐겁게 봤습니다. 실제 업계에 가까운 환경을 연출하면서도 대부분의 사건이 무사시노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하는 작품이 중심에 있다는 점이 재밌었습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있을법한 캐릭터들과 사건들이 나오고 하나하나 캐릭터성이 살아있지만 이질감이 드는 캐릭터는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가 저는 시로바코 TVA가 재밌었던 이유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너무 가깝기때문에 자칫하면 지루해질수도있는 소재이고 캐릭터들또한 귀엽고 매력있지만 자극적인 캐릭터는 딱히 없다는 점에서 잘못하면 다큐멘터리처럼 변해버릴수도 있을법한 애니였지만 사회 초년생이라면 누구나 고민할법한 일들과 캐릭터들의 성장. 이 두 면에서 재미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의 호흡또한 좋았습니다. 일주일, 이주일 단위로 스토리를 진행하는게 아닌 사건과 사건간의 거리를 뛰어넘으며 진행됬기때문에 쉽게 지루해지지 않았고 주인공인 미야모리가 사회초년생으로 무사시노 애니메이션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가슴을 졸이기도 하고 지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애니메이션에서 볼수 없었던 극단적인 사실적 묘사로 인해 캐릭터들에게 더욱 감정이입을 하게 된것이 시로바코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느꼈었죠.

 

사실 말이죠, 저는 TVA를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제 자신을 일 빼고는 말할 수 없을정도로 열심히 살고있는것도 있었지만 미야모리와 그 친구들에게 많은 공감을 느꼈기 때문이죠. 특히 에마가 자신의 실력에 회의감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라던가 시즈카가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무사시노 애니메이션에 성우진으로 올라섰을때같이 캐릭터들의 힘듬과 고생 그리고 아픔이 느껴질정도로 시로바코는 저에게 많은것을 느끼게 하게 해준 애니메이션이였습니다. 특히 마지막화의 미야모리와 친구들이 함께 자신들이 이제부터 만들어나갈 칠복진의 모습을 꿈꾸는 모습은 제가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느꼈던것중 가장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릴때부터 가지고있던 꿈을 잊지않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들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을 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성장해 그들만의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알기에 더욱 감동적이였습니다. 그 장면은 볼때마다 지금도 눈물을 삼키며 봐야만 하죠..

시로바코 극장판

시로바코 극장판은 TVA 완결시점에서 4년이 지난 미야모리와 무사시노 애니메이션을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애니 완결시점 이후로 한번에 두작품을 같이 진행할정도로 성장하던 무사시노 애니메이션은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크게 데미지를 입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직원의 대부분이 퇴사하거나 이직, 프리랜서로 전향했으며 극장판 시점에서는 과거 원청으로 제작했던 작품의 2기를 하청으로 들어가 작업하는등 회사 상황이 매우 나빠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제작총괄 자리를 지키고 있던 미야모리에게 이제는 사장으로 승진한 나베 전 프로듀서에게 무사시노 애니메이션측에 애니메이션 극장판 일이 들어왔다는 말을 하게 되고 그 이후로 미야모리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만들어나가는게 이번 시로바코 극장판에서의 내용입니다.

철야중인 미야모리

이번 극장판에서는 TVA에서의 진행 구조를 똑같이 따라갔습니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TVA 1쿨에서 나올법한 분량을 2시간동안의 러닝타임에 전부 넣은 격이죠. 기존 TVA에서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사건을 묘사하고 방영까지의 현장에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실상 TVA 3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똑같이 기존 구조를 따라갔습니다. 아무리 2시간의 러닝타임이라고는 해도 극장판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게 있을텐데 이를 전부 포기했다는점은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또한 TVA의 경우 매회마다 조절할 수 있는 템포가 있고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충분했겠지만 이런것들을 극장판에서 전부 보여주려고 하다보니 각 캐릭터마다의 분량이 짧아졌고 결국은 많은 캐릭터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인물 몇명을 제외하고는 서비스씬정도의 분량을 가지게 되어 버렸습니다. 차라리 기존처럼 많은 직원들을한명씩 보여주기보다는 주요 캐릭터를 몇명 정하고 그들의 생각과 관계를 중점적으로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분명 새롭게 등장한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었고 기존의 사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큰 문제상황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중점을 두는게 아닌, 그저 미야모리 한명의 캐리력으로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은 기존의 시로바코의 장점이였던 '캐릭터보다 무사시노 애니메이션, 그리고 만들고 있는 작품에 더욱 중점을 둔다'라는게 사라져버렸다는 겁니다. 원래대로라면 제작중인 작품의 캐릭터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직원들에게 업무를 분담하고, 원화를 회수하기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는게 원래의 시로바코입니다. 그러나 극장판에서는 기존의 노선을 버리고 작품이 아닌 캐릭터들에게로 중심을 옮깁니다. 전개는 분명 기존 TVA를 따라가는데 내용이 캐릭터쪽으로 옮겨저버리니 이질감이 느껴질수밖에 없었죠. 실제로 무사시노 애니메이션이 맡은 작품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게되는건 작중 중반입니다. TVA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들어가기 전 사전조사나 원작을 읽으며 캐릭터를 구성하는 파트가 있지만 극장판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죠. 그대신 성장한 캐릭터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분명 무사시노 애니메이션의 최대 위기이고 맡게된 애니메이션또한 지뢰밭일게 뻔한데 이에대한 문제나 해결장면이 거의 나오질 않습니다. 나오더라도 미야모리가 전부 해결해버리죠. TVA 1기에서의 스케쥴 폭발 총편집 임박의 위기감과 비교했을때는 너무나도 임팩트가 약합니다.

 

성우로서 성장한 시즈카의 모습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들은 비중이나 분량면에서 빈약했고 너무 많은 캐릭터를 담으려고 하다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담지 못했습니다. 이럴바에야 차라리 줄어든 등장인물에 집중해서 심도높은 스토리를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직원 대거퇴사로 인해 갑작스럽게 승진해버린 미야모리가 회사의 위기를 넘기기위해 고민하는 장면이라던지, 퇴사후의 세이이치 감독의 모습이라던지,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바뀌어가는 에마라던지. 충분히 깊이있게 표현할만한 상황이나 사건들은 많았지만 이를 단편적으로밖에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이 이번 시로바코 극장판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였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다시한번 미야모리와 다른 캐릭터들을 볼수 있다는건 좋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미야모리는 고비를 이겨냈고 다들 업게에서 어느정도어도 짬이 차고 몇몇은 관리자 포지션으로 올라간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사회초년생때 나오는 고민거리와 어느정도 경력이 쌓인 상태에서 나오는 고민거리가 다른것을 보여주는 장면은 정말 좋았습니다. 사회 초년생때에는 이대로 먹고살 수 있을까. 지금 하는 일이 나랑 맞는 일인걸까 하는 고민들을 했다면 나중에서는 지금 가고있는 방향이 맞는걸까, 어떻게하면 사람들을 더 잘 대할 수 있을까와 같은 주제의 고민을 하게 되는것을 보여줌으로써 캐릭터들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는 우리들이 꿈꾸는 칠복진에 한발 더 가까이왔다는걸 묘사함으로써 그들의 성장에 쐐기를 박아 넣었습니다.

 

기존에 기대했던것에 비해서는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익숙한 캐릭터들을 다시 만나고 그들이 성장한 모습을 볼수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 좋았던것 같습니다. 작화또한 TVA에 비해 밀리지도 않았고 속도감도 좋았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자신의 꿈을 위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것만으로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언젠가는, 그녀들의 꿈인 칠복진이 이루어질수 있기를 소망하고싶네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